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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of vagabond

[밀양] 상남자를 위한 집짓기 본문

노출콘크리트/국내(기타)

[밀양] 상남자를 위한 집짓기

자두살구네 2019. 5. 8. 13:59

상남자인 아버지를 위해 건축가 아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겉모습에서부터 상남자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 집 속으로.

혼자 사는 게 좋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만’의 집을 짓겠다고 선언한 아버지. 선언 이후로 어머니는 밤마다 걱정되어 설계를 맡은 아들에게 전화하신다.

“느그 아버지 욕심이 끝이 없다. 무조건 싸게 해라, 알았나.”

하나밖에 없는 형제도 도움이 안 된다.

“안 봐도 비디오다. 다 짓고 나믄 바로 질리서 팔자고 할 걸.”

가족 일일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FM대로 진행해야 한다. 자칫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평생 욕을 먹기 때문이다. 도망갈 곳도 없다. 명절 때마다 물이 잘 안 빠지니, 냄새가 나니, 환기가 잘 안 되니 같은 잔소리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럴 순 없지 않은가. 같이 설계하게 될 김 팀장에게 당부를 전한다.

“학성아, 이번 거…빡셀 거 같아.”

사이트 답사 겸 요구상황을 정리할 겸 김 팀장과 함께 밀양으로 내려가 첫 미팅을 진행한 날.

“내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 니 알아서 해라. 지아주는 대로 살꾸마.”

“예?”

“내가 뭐 집을 아나. 니가 알지. 니가 알아서 해놓으믄 내가 몸만 들어가 살란다. 니 맘대로 해라.”

아버지의 의견을 반영해 지은 단층집의 모습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 드디어 기회가 왔다는 표정의 김 팀장. 2달간의 계획 설계를 마치고 설계안을 보여드렸더니….

“뭐시라? 지붕이 박공이라고? 니는 건축 공부했다는 아가 멋대가리 없구로 박공지붕이 뭐고. 내는 그러면 이 집 안 짓는다. 가지가라.”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많은 걸 준비했지만, 박공지붕 그림 하나에 모든 게 날아갔다. 고생해서 만든 모형을 물려놓고 “그냥 하고 싶으신 거 있으면 고마 다 얘기해주이소” 하니 그제야 하나씩 요구 조건을 말씀하신다.

 

 

내부에 벽을 두지 않고 외부 기둥으로 지붕을 지지했다. 건물 전체는 바닥에서 800mm 띄워 주변과의 경계를 분명히 해주었다.

아버지께 퇴짜 맞았던 박공지붕의 계획설계 모형

“마, 나는 거실 같은 거 필요 없다. 방도 필요 없다. 느그 내려오면 일 년에 몇 번 내려온다고 낑기가 자면 되지!”

“하이고, 참.”

“내가 집에서 고기 꾸버먹는다고 느그 엄마가 맨날 구박해쌌는데 진절머리난다! 후앙(Fan)을 마 한 3개는 달아야 되지 않겠나.”

“아니, 두 개도 아니고 3개예?”

“나머지 한 개는 침대 위에. 침대에서 담배 피야 된다.”

“진심…입니까?”

“알제? 내 취미. 목공예. 알고 있제?”

“언제부터예??”

“화목난로도 한 개 넣어주고.”

“그래도 보일러는 돌려야 될 낀데!”

“집은 마 높아야 돼. 땅에 붙어 있으믄 바람 불믄 먼지 들어오고 비 오면 물 들어오고 촌집은 높아야 되는 기라.”

“아니 요새는….”

“어허, 확 마 그냥 높이 달라고! 또 내 답답한 거는 질색이니까네 유리창은 큼지막하게 해도.”

“그러면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고….”

“쓰읍!”

“그리고 마당은 전부 공구리.”

“예?????????”

“지붕은 평평해야 멋진 기다. 알겠나.”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전경

HOUSE PLAN

건축면적 ▶ 78.6㎡(23.77평) | 연면적 ▶ 78.6㎡(23.77평) 
건폐율 ▶ 10.38%|용적률 ▶ 10.38%|주차대수 ▶ 1대|최고높이 ▶ 3.5m 
구조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 지상 –철근콘크리트 
단열재▶ THK110 경질우레탄폼 단열재 
외부마감재▶ 노출콘크리트 위 발수코팅, THK34 로이삼복층유리 
창호재▶ 120mm 알루미늄 커튼월프레임|에너지원 ▶ LPG 
조경▶ 건축주 직영|전기·기계·설비▶ 하나기연 
토목▶ 명진토목|구조설계(내진)▶ 터구조 
시공 ▶ ㈜도담종합건설|설계 ▶푸하하하프렌즈 
총공사비 ▶2억3천만원(인테리어, 토목 포함 / 설계비, 조경공사 제외)

알 수 없는 패배감을 안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곧바로 두 번째 설계를 진행하였다. 요구조건을 비꼬지 않고 그대로 건축화해보면 어떨까. 침실-화장실-주방-마당 4개의 영역이 벽으로 구획되지 않고, 빈 공간에 가구처럼 놓여 있는 상상을 해본다. 기둥과 지붕만 있고 벽이 없는 주택, 벽이 없으므로 지붕을 받치기 위한 기둥은 외부 기둥이 되고 내부는 4면이 유리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든다. 아무리 건축주가 쿨하고 우리가 무식하다 해도 기온 변화가 극단적인 한반도에 4면 유리의 주택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남향의 배치는 피한다. 장변이 북쪽과 남쪽을 면하면 한겨울 북쪽 면의 유리는 결로가 일상이 될 것이고, 한여름 남쪽 면의 유리는 그야말로 찜통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산맥이 흐르고 있어서 풍경이 흐르는 장면을 집은 온전히 받아들인다. 외부 기둥의 단면을 세장하게 늘린 것도 차양의 역할을 위해서였다. 그로 인해 길어진 지붕의 처마는 집 내부에 깊은 그림자를 만들어 한여름 아침에 동트는 햇볕에 클라이언트가 타죽지 않아도 되었다.

침실 밖 풍경. 내부는 벽으로 구획되지 않은 4개의 영역(침실-화장실-주방-마당)으로 나뉜다.
필요한 것만으로 채운 간소한 주방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벽 – 노출콘크리트 위 발수코팅 / 바닥 –LG하우시스 / 천장 – 시멘트뿜칠
주방 가구·붙박이장 ▶ THK18 미송무절합판 위 투명도장(현장 제작)
조명▶ RAAT|계단재·난간 ▶ THK10 STEEL(현장 제작)
방문 ▶ THK9 미송무절합판 위 투명도장(현장 제작)

이 주택에는 형태가 없다. 구축의 방식이 전부를 설명하고 있으므로 집을 구성하는 디테일도 구축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주택의 지붕의 처마에는 방수턱이 없다. 얇은 구조체가 노출되어 보이는 것이 전부다. 구조의 미를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비용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구체타설 시 충분히 다져서 밀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방수공사를 대신했기 때문에 별도의 방수공사도 하지 않았다(앞서 두 번의 프로젝트에서 같은 방식으로 방수공사를 대체한 적이 있는데, 5년이 지난 지금도 문제없다). 혹시라도 크랙에 의해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크랙의 위치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추후 대처가 복합방수보다 유리한 장점도 있다.

SECTION

①현관 ②거실 ③주방 ④세면실 ⑤화장실 ⑥드레스룸 ⑦침실

PLAN

①현관 ②거실 ③주방 ④세면실 ⑤화장실 ⑥드레스룸 ⑦침실

이 주택은 막힌 벽이 없기에 벽 가운데 만드는 창문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시스템창호나 PVC 이중창과 같은 일반적인 방식 대신 ‘커튼월 공법’이 적용되었다. 아버지는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게 당연하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리의 사양을 34mm 로이삼복층유리에 아르곤가스를 주입하여 성능을 끌어 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벽이 커튼월로 대체되니 공사비와 공기가 같이 줄어들었다. 외벽에 포함되는 수많은 공정(외부마감재-방수-구체-단열재-목상-석고보드 2ply-도장)을 유리 한 장으로 대체한 셈이니 말이다.

 

외부 긴 처마는 집 안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떤 방해 없이 내부에서 외부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넓은 창

이 모두는 상남자 집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화장실과 현관의 슬래브는 200mm 다운되었다. 물을 쓰는 공간이기에 거실과 단차를 만드는 것이 당연하지만, 보통은 50~100mm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오로지 물이 거실로 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평평한 바닥에 단이 져야 한다면 그것은 확실한 한 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계단의 한 단 높이인 200mm는 작은 차이임이 분명하지만, 사용자가 매번 사용하면서 이 집만의 감성을 느낄 수 있길 바랐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한 편에 작은 난로도 두었다.
현관 앞에 놓인 야외 공간

전원의 주택은 마당과 건물의 관계에서 거의 모든 해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름다운 집과 아늑한 마당. 그야말로 전원의 삶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취했던 방식은 다소 극단적이었다.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 여백을 거친 자연으로 그대로 남겨두자는 것이다. 도심지와 달리 시골은 필지의 경계가 모호하다. 모호한 경계를 분명한 경계로 만드는 방식은 결국 조경이다. 이는 한마디로 공사 범위가 무한정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이 집의 경우 건물을 제외한 대지 면적이 200평이 넘는다).

마당을 건물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고 건물 전체를 바닥에서 800mm 띄워 주변과의 경계를 분명히 해 제한된 예산을 좀 더 집중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되었다.

DETAIL

원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남자의 집은 지리적인 한계, 제한된 예산, 어머니의 협박 등이 만들어낸 엉뚱한 결과물이다.

이렇게 우당탕 공사는 끝났지만, 아버지가 부디 금방 질리지 마시고 이 거친 집과 함께 오랫동안 본인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다. < 글 : 푸하하하프렌즈 윤한진>

 

 

건축가 _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푸하하하프렌즈]

 

푸하하하프렌즈는 (좌측부터)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3명으로 구성된 건축사사무소다. 서로 친구 사이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어김없이 싸우지만, 다른 색깔을 가진 세 사람이 모여 만든 예상치 못한 결과물은 그들을 다방면에서 활동하게 한다. 올해로 독립 7년차가 된 푸하하하프렌즈는 건축의 범위를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고 다양한 실험을 하려고 한다.